[또 다른 시선, 워코노미] 부겐빌의 구리광산… 자원의 축복이 독립을 가로막다

한국일보, 2020.02.22 https://news.v.daum.net/v/20200222044242668

1988년부터 10년간 지속된 부겐빌-파푸아뉴기니 무력 충돌의 근간에는 세계적 매장량을 갖춘 부겐빌 팡구나 광산을 둘러싼 양측의 이해관계도 작용했다. 내전 당시 부겐빌 혁명군이 팡구나 광산을 통제하고 있는 모습. 뉴질랜드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독일이 북쪽 솔로몬제도를 흡수하면서, 솔로몬 제도의 가장 큰 섬인 부겐빌이 독일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세계 2차대전 이후 부겐빌이 뉴기니 동부와 함께 오스트레일리아의 보호령이 됐고, 이후 1975년 독립선언을 하였다.

하지만 파푸아뉴기니와 오스트레일리아는 독립선언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으며, 부겐빌에 남은 선택지는 전쟁뿐이었다. 13년 후 부겐빌은 섬 내의 파푸아뉴기니 병력에 고격을 개시했고, 부겐빌에게는 독립전쟁이었지만 파푸아뉴기니 관점에서는 반란이자 내전이었다.

둘 사이의 무력 충돌은 약 10년간 지속되었으며, 수천명의 병력이 동원된 대결에서 양쪽 모두 1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전장이 된 부겐빌은 많게는 1만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이후 둘 사이의 휴전이 1998년 4월에 성립되었다.

이후 2016년 1월 부겐빌 자치정부와 파푸아뉴기니 정부는 부겐빌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관리 위원회 설치에 동의했으며, 2019년 부겐빌 독립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부겐빌 국민의 유효표 중 98.3%가 완전한 독립에 찬성표를 던졌지만 최종결정 권한이 파푸아뉴기니 정부에 있고, 아직 파푸아뉴기니 정부 측에서는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이다.